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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효자 고들빼기!
    우리의 자존심!

    양평
    고들빼기마을

    용문산

    양평군의 상징 용문산과 은행나무

    관광지


    천년고찰 용문사와 더불어 관광지로 지정되어 평일에도 탐방객이 끊이질 않고 관광지 내에 놀이시설이 있어 어린이와 동반한 가족 단위의 1일 관광코스로 제격입니다.



    단풍거리

    용문산의 등산코스는 정상일대가 출입금지구역이므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용문사에서 북서쪽 계곡을 따라 마당바위에 이르는 코스와, 용문사의 북서쪽 산능을 넘어 상원사를 거쳐 장군봉에 이르는 코스가 있으나 함왕봉이나 백운봉을 연계하면 얼마든지 변화 있는 산행코스를 잡을 수 있습니다.


    굳이 정상 가까이 오르려 한다면 정상 동북쪽 1.127m지점인 석문까지 산행이 가능합니다.
    이코스는 정상에서 남동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암릉왕을 따라 오르게 되어 있는데 석문에 올라서면 발 아래로 시원한 조망이 펼쳐져 정상에 서 있는 것 같은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등산코스 계곡

    [등산코스]
    1. 주차장-->용문사 ---> 마당바위(1시간 30분)
    2. 주차장 --> 용문사 --> 상원사 --> 장군봉(2시간10분)
    3. 주차장 --> 용문사 --> 암릉 --> 석문(2시간40분)
    4. 연수리 --> 상원사 --> 장군봉(2시간30분)


    천연기념물 30호로 지정된 용문사 은행나무는

    은행나무

    현재 우리 나라에 생존하고 있는 은행나무들 중에서 가장 크고 우람하며 오래 된 것으로 용문사 대웅전 앞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은행나무는 나이는 약1,100 ~1,500여년으로 추정되며 높이 60여m,밑둥 둘레가 14m로 동양에서는 가장 큰 은행나무입니다.



    산으로오르는 계단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敬順王)이 그의 스승인 대경대사를 찾아와서 심은 것이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세자 마의태자 (麻衣太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에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가 내려 이처럼 성장한 것이라고도 합니다.

    많은 전란으로 사찰은 여러 번 피해를 입었지만 특히 정미의병이 일어났을 때 일본군이 의병의 본거지라 하여 사찰을 불태워 버렸으나 이 은행나무만은 불타지 않고 살아 남았던 나무라하여 천왕목(天王木)이라고도 불렀고 조선 세종 때에는 정3품의 벼슬인 당상직첩을 하사받기도 한 명목입니다.

    이 나무에는 또한 전설이 있습니다. 옛날 어느 사람이 이 나무를 자르려고 톱을 대었을 때 톱자리에서 피가 쏟아지고 맑던 하늘이 흐려지면서 천둥이 쳤기 때문에 중지하였다 하며 또한 나라에 큰 변이 있을 때 소리를 내었다고 하는데 고종이 승하하였을 때에는 커다란 가지가 1개 부러졌고, 8.15해방과 6.25사변 때에도 이 나무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었다고 합니다.

    한편, 2005.10.29(토) 18:00~19:00. KBS-1. TV 신설프로그램인 『대한민국 가치 대발견』첫회 방영에서 용문사 은행나무의 가치를 각계의 전문가들로부터 자문을 구하고 측정한바, 은행나무의 수명이 앞으로 200년을 더 갈것으로 예상하여 약 1조 6,884억원의 가치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용문사 용문사야경

    용문사는
    신라 선덕왕 2년(913년) 대경화상이 창건한 고찰로써, 조선시대 후기까지는 사세가 융성하였으나 1907년 정미 의병과 6.25전쟁때 전소된 것을 이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